세계 최대 게임 전시회로 불리는 E3(Electronic Entertainment Expo)가 막을 내린지 만 하루가 지났다. 지난 3일동안 끊임없이 쏟아져 나온 충격적인 게임소식에, 전세계 게이머들은 환호하고 또 환호했다. 각국의 기자들은 이런 소식들을 자국에 보내기 위해 분주한 3일을 보내야만 했다. 그만큼 전세계 게이머들은 아직까지도 흥분의 도가니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이번 E3는 차세대 게임기와 유명 게임들의 후속작들, 그리고 신작게임들의 대거 공개로 어느 해보다 뜨거운 관심을 모았다. 전세계 80개국, 400여개 게임업체가 참가해 총 5000여종의 게임과 하드웨어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을 만큼 위용도 대단했다.
하지만 이번 E3전시회에서 가장 주요한 포인트를 뽑자면, E3가 한꺼번에 많은 대작들을 상영하는 영화관에 온 듯한 착각을 느끼게 했으며, 이로 인해 '즐기는 영화가 머지않았다'는 긍정적인 견해와 '기형적인 발전이다'는 의견이 서로 충돌을 일으켰다는 점이다.
여기저기서 환호, 영화관을 방불케 한 E3 행사
실제로 이번 E3에서는 ‘실사를 보는 듯한’, 혹은 ‘극장에서나 볼 수 있을 듯한’ 게임관련 동영상이 많은부스에서 상영되었다. 게다가 이런 동영상들은 하나같이 ‘말을 잃었다’라는 식의 찬사를 자아낼 만큼 훌륭했다.
동영상이 이렇게 쏟아져 나온 이유는 이번 E3에 차세대 콘솔 게임기의 연이은 발표가 있었기 때문. 닌텐도의 ‘레볼루션’, MS의 ‘Xbox360’, 소니의 ‘PS3’가 모두 E3에서, 혹은 바로 직전에 공개됐고, 이 세 회사 모두 ‘기존의 35배 성능’ 등의 화려한 미사여구를 앞세우며 눈이 휘둥그래질 만큼 대단한 데모 동영상을 뿌려댄 것이다.
이들 게임기는 하나같이 HD이상의 화질, 그리고 DVD로도 감당할 수 없는 ‘대단위 매체’의 채용 등 최신기술로 무장했으며, ‘미래의 게임’이 더욱 높은 퀄리티의 그래픽과 사운드를 필요로 할 것이라는 것을 예시했다.
흡사 할리우드 영화 식의 대자본 시대, 더더욱 높은 그래픽 기술과, 더더욱 큰 용량, 더 많은 자본을 바탕으로 한 블록버스터 영화와 같이 게임도 대자본의 시장에 발을 들여놓았다고 E3는 진지하게 말하고 있었다.
게임의 영화화는 이미 진행 중?
지속적인 게임기의 성능향상으로 예년부터 '매트릭스' '스파이더맨' '해리포터' 등의 블록버스터 할리우드 영화가 게임으로 만들어져 출시됐었지만, 이제는 출시 전 영화가 게임으로, 게임이 영화로 만들어지는 진정한 ‘원소스 멀티 유즈’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영화와 게임의 경계가 본격적으로 허물어지게 된 것은 이번 차세대 게임기의 출현이 도화선이 된 것으로 풀이된다.
영화의 게임화는 이미 E3에서 부각되고 있는 요소다. EA는 '대부' '제임스본드 007' '해리포터와 불의 잔' '배트맨'을 내놓았으며, 루카스아츠는 '스타워즈' 시리즈로 게임 3가지와 '인디아나존스'를, 아타리는 '매트릭스', 소니의 모바일 '스파이더맨', 조우드의 '스타게이트' 등을 준비 중이다. 또한 ‘파이널 판타지’ ‘툼레이더’처럼 게임의 영화화도 가속화되고 있다.
황당할 정도로 높은 퀄리티의 동영상들에 업계도 이미 게임의 잠정적인 영화화에 동의하기 시작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스퀘어 에닉스가 ‘파이널 판타지’ 영화를 공개했지만, 다른 동영상들의 퀄리티들도 그에 못지않다”며, “예를 들어 코나미가 액션 어드벤처 영화를 발매한다고 해도 이상하게 생각할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소감을 말했다.
다른 한 관계자는 “게임은 기본적으로 쌍방향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영화든 만화든 얼마든지 친화력 있게 접근이 가능하다”며 “게임기술이 발달할수록 점차 영화와 전혀 차이가 없는 시대가 올 것으로 예상한다”고 의견을 제시했다.
이러한 얘기는 실제로 국내의 온라인 게임을 선도하고 있는 엔씨소프트의 김택진 사장도 예측한 바 있다. 김택진 사장 인터뷰에서 “향후 5년은 게임이 영화와의 결합에 따라 '보는 영화시대'에서 '즐기는 영화시대'를 만들어가는 시기가 될 것”이라고 견해를 밝히기도 했다.
영상에 치우친 기형적 발전
반면에 이와 다른 견해도 있다. 이런 영화와 같은 비주얼적 발전을 탐탁치 않게 바라보는 시선 또한 많았던 것. E3가 차세대 게임기를 공개하는 등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지만 그 이면에는 ‘게임의 비전을 제시해주지 못한 싸구려 행사’라거나 ‘눈을 즐겁게 해주고는 있지만 중요한 것이 빠진 쇼’라는 평가를 내리는 전문가들 또한 많다.
업계가 가장 큰 우려를 하고 있는 부분은 공개된 영상들이 ‘실제로 돌아가는 영상’이 아니라, 철저히 이미지 영상이었다는 것. 업계는 이번 이미지 영상이 약 5년전 PS2가 발매되기전에 소니가 ‘이정도의 영상이 PS2로 만들어질 것이다’라는 이미지 영상을 내놓은 것과 그 흐름이 같다고 말한다. 그 당시에도 놀랄만한 영상으로 게이머들의 눈을 현혹시켰지만, 실제로 발매된 PS2의 성능은 턱없이 부족했기 때문에 이미 한차례 ‘사기’를 당했었다는 것. 업계 전문가들은 더는 속지 않겠다며 즉 차세대기의 실시간 영상이 아닌 이런 영상은 ‘쇼’에 불과하다는 반응이다.
또 이런 영상만의 발전에 대해 미국의 한 평론가는 “이번 E3의 소니와 MS는 게임성의 향상에 대해 보여준 것이 없었다”면서 “주먹에 맞아서 뻗는다는 사실을 아는데 얼마나 많은 ‘폴리곤’이 필요한지 모르겠다”고 비꼬았다.
다른 우려는, 게임 제작비의 전반적인 상승이다. 말 그대로 영화 수준의 게임이 발매되려면, 영화 수준의 비용이 들어간다는 점이다. 현재의 영화가 천문학적인 수준의 비용을 소요한다는 걸 가정할 때, 게임의 비용이 상승되면 현재의 중소 게임업체들은 사라지고, 자본을 갖춘 대형 개발사들만 살아남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또 대자본이 들어가게 되면 비용을 뽑기 위해 자연스레 속편만 찍어내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양상이 그대로 드러날 것이라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더 이상 비주얼만의 발전이 아니라 ‘앞으로는 이런 게임이 가능하다!!’라는 비전이 제시되는 행사가 개최됐으면 한다”고 E3에 대해 씁쓸함을 나타냈다.
화려한 E3, 차세대기는 본격적으로 출격
E3가 성황리에 막을 내리고 게임계는 또 다시 한차례의 요동을 위해 준비하기 시작했다. E3의 테마였던 3기의 차세대 게임기가 전부 공개되고, 이미지 동영상이나마 게이머들의 가슴을 강타했다. 또한 ‘대세는 온라인’이라는 말이 실감날 정도로 온라인 게임들도 세계를 빠르게 잠식하고 있다.
게임이 ‘즐기는 영화’로 발전이 되든, 그러한 발전이 ‘기형적인 발전’이든 간에, 게임 개발사들의 노력들은 ‘게이머를 즐겁게 해주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빠르게 변해가는 게임의 발전을 지켜보며 최대한 재밌게 즐기는 것 또한 게이머들의 몫이 아닌가 싶다.
조학동 게임동아 기자 (igelau@gamedong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