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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프로듀서 서관희

Editor.zuke 2004. 9. 20. 2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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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프로듀서 서관희
출처세계일보 9/16


게임은 새로운 시대의 미디어입니다. 기술 발전에 따른 인간의 한 표현 방식이지만, 먼 미래에 다가올 ‘가상공간’의 원시적인 모습일 수도 있습니다. 이미 게임은 기술과 예술의 모호한 정점에서 그 영역을 넓혀가고 있죠. 새로운 세대와 새로운 감성을 낳기도 합니다.

요즘 줄넘기, 구슬치기, 술래잡기를 하는 초등학생들을 보신 적이 있나요. 그들에게 이런 전통 놀이를 즐기게 하는 건 어쩌면 시대착오적인 발상일 수도 있습니다. 그들이 ‘놀이’를 통해 배우고 느끼는 감성은 이미 기성세대가 짐작하거나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선 것이니까요.


그렇다고 무심코 바라볼 순 없겠죠. 최근 몇 년간 온라인게임은 아이템 현금거래, 게임중독 등 많은 역효과를 불러일으켰는데요. 이런 부분을 어떻게 해결할지도 고민해봐야겠습니다. 바람직한 게임, 좋은 게임은 어떤 것인지도 함께 말입니다.


이런 과제와 고민을 갖고 ‘신미디어’인 게임을 10년 넘게 만들어 온 서관희 프로듀서를 만나봤습니다.


‘이코’라 불리는 머리에 뿔이 난 소년이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그 소년을 두려워했다. 마을에 재앙을 몰고 오는 사악한 존재로 여겨졌다. 이내 사람들은 관습에 따라 소년을 관에 가두고 사악한 마녀가 머무르는 성에 재물로 바쳤다. 다행히 관에서 빠져나오게 된 이코. 이곳저곳을 둘러보다 한 소녀를 만난다. 몸이 하얗게 빛나는 소녀 ‘요르다’는 그처럼 새장 속에 갇힌 존재다. 동병상련이 치민다. 그리고 그녀가 어머니, 마녀에게 자신의 육체를 바쳐야 하는 운명에 처한 사실을 알게 되자 그녀를 구해내겠다고 다짐한다. 그녀 손을 잡는 순간 둘의 여정은 시작된다. 소니의 액션 어드벤처 게임 ‘이코(ICO)’는 동화적 감수성을 자극한다. 부드러운 그래픽 효과는 잊혀진 동심을 추억하기 충분하다. 전혀 폭력적이지도 않다. 게임을 하다보면 어느새 이코가 된 자신을 발견한다. 그녀를 향한 보호본능은 게임 속 가상이 아니다. 실제 자신의 감정이다.


10년 전 ‘게임키즈’로 한국 게임계에 투신한 게임 프로듀서 서관희(30·엔트리브소프트)씨가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는 게임이다. ‘재미’는 없을 것 같다. 단번에 통쾌함을 풀어주는 폭력적 요소도, 눈을 자극하는 화려한 그래픽도 찾을 수 없다. 역시나 흥행에도 실패했다.


우리 사회에서 게임은 아직 각종 편견의 덫에 발목을 잡혀 있다. 부모들은 자녀가 초등학생이 되면서 컴퓨터 게임을 접하면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다. 게임의 폭력성, 중독성 등 눈에 보이지 않는 부정적 요소뿐만 아니라, 요즘은 게임 속 아이템이 현금 거래가 되면서 아이들의 주머니까지 탐내고 있다.


서씨는 소위 그런 ‘편견’과 동떨어져 있는 게임 프로듀서다. 실제로 게임은 어렸을 적 자신에게 꿈을 키워줬고, 잊을 수 없는 추억과 감동을 선물했다. 중학교 때 친구와 함께 불을 꺼놓고 보던 롤플레잉게임 ‘이스2(YS2)’의 오프닝 동영상 이미지는 아직도 아련히 그의 감수성을 자극한다.



“영화는 일방적으로 이야기를 주입합니다. 영화에서는 화면의 이미지·편집 등을 따라가며 감정을 느낀다면, 게임에선 본인이 주인공이 되죠. 내가 게임 속에서 주인공이 되는 겁니다. 이런 경험은 상상력과 감수성이 풍부한 어린아이들에게 영화나 만화보다 더 큰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해요.”


그의 게임 경력은 우리나라 게임제작사와 역사를 같이한다. 30대 초반이지만 이미 게임 제작 경력은 올해로 10년을 넘어선다. 1992년 인천 자기 집 근처 한 컴퓨터 학원에서 친구, 선배들과 함께 게임을 만들기 시작했다. 당시 이들이 만든 롤플레잉게임 ‘어스토니시아 스토리 데모판’은 하이텔 컴퓨터게임 제작 동호회 자료실에 올려져 큰 인기를 누렸다. 이후 ‘손노리’라는 팀을 꾸려 본격적으로 게임을 제작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안주하게 마련이다. 게임 제작자라면 한 ‘장르’를 고집할 법도 하다. 그의 경우는 다르다. 새로움을 추구하는 관성은 기득권을 거부했다. 롤플레잉게임으로 시작해 액션 어드벤처 게임, 퍼즐 게임, 시뮬레이션 게임, 최근에는 온라인 골프 게임 ‘팡야’까지…. 작품은 항상 새로운 옷을 갈아입었다. 그러기에 ‘시행착오’라는 단어는 친구처럼 그를 따라다녔다.


“남들이 이미 시작해버린 것을 뒤늦게 시작하는 건 어렵죠. 예컨대 저는 요즘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다중접속 온라인게임(MMORPG)을 잘 알지 못해요. 그러니까 의욕도 생기지 않죠. 시장이 온라인 환경으로 변했다고 해서 무작정 그런 트렌드를 따라갈 순 없었습니다. 다르게 시작하고 싶었죠. 스포츠 온라인게임 ‘팡야’를 들고 나온 것도 그 때문입니다.”



‘귀여움(Cute)’ ‘쉬움(Easy)’ ‘건전함(Clean)’ ‘안전함(Safe)’이라는 컨셉트로 개발된 신개념 스포츠 온라인게임 팡야는 현재 서비스 시작 5개월 만에 동접 3만, 최대 회원 200만명을 돌파했다. 지난 6월 부분 유료화 이후 신규 가입자 수는 꾸준히 느는 추세다. 국내에서 성공한 몇 안 되는 스포츠 게임이다.


“회사 내에서 시연회할 때 다들 ‘이런 게임이 성공하겠냐’고 걱정했어요. 팀장들, 경영진들 모두 의구심을 드러냈죠. 그래서 슬럼프에 빠졌습니다. 하지만 지인들한테 찾아가 자문도 구하고, 이리저리 물어보고 다니니까 긍정적으로 보는 사람들이 있더라고요. 2000년 당시 완성도가 떨어지는 온라인게임도 많았고, 잘 만들면 성공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붙었습니다. ‘개발이란 길어질 수도 있는 것’이라며 팀원들을 독려했죠.”



팡야는 성공한 게임이다. 하지만 아직 뭔가 부족하다. 그가 밝힌 이상과 현실에 괴리가 보인다. 팡야는 그가 꿈꾸던 게임은 분명 아니다. ‘재미’는 있지만 ‘감동’은 없다. “감동이 꼭 있어야 하나”라는 반문이 있을 법도 하지만, 이미 말초적 재미를 좇는 게임이 충분한 현실에서 눈꼴신 ‘사치’는 아니다.


탄탄한 스토리에 때로는 영화 이상의 감동을 주는, 패키지 게임(스토리가 있는 오프라인 게임) 시장은 저문 지 오래다. 1990년대 중반, 서씨와 같은 ‘게임키즈’의 왕성한 창의력을 자양분으로 무럭무럭 자라났던 국내 패키지 시장은 90년대 말 온라인게임이 등장하면서 한풀 꺾였다. 이제는 아예 그 싹마저 자라지 않고 있다. 인터넷을 통한 무분별한 게임 복제 또한 이런 추세를 부채질했다. 또 ‘현금거래’ ‘중독’ 등 사회적 역효과를 불러일으키는 온라인게임 일색인 한국 게임판은 다양성이 결여돼 있다.


그도 별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으리라. 하지만 그의 선택은 남다르다. 그의 해법은 ‘감동적인 재미’다. 게임 기획자, 디자이너, 프로그래머, 프로듀서 등 팀 구성원의 모든 ‘센스’를 녹여 유저들에게 편안함과 재미를 선사하겠다는 노력 그 자체가 ‘감동’이다.


―미래 디지털 시대의 예술은 프로그래머가 주도할 수 있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게임 등 디지털 콘텐츠의 경우 프로그래머가 기술자로서 그 역할을 마치는 것이 아니죠. 예술가와 닮은 작가정신도 프로그램에 담지 못하리라는 법은 없잖아요.


“게임 만드는 사람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이 센스라고 생각해요. 프로그램뿐만 아니라 사운드, 그래픽, 기획, 심지어 마케팅도 사람들의 감정과 마음을 읽는 센스가 필요하죠. 프로그램의 노하우는 공부하면 되는데, 이런 감각은 애정이나 의지가 있어야 얻을 수 있죠.”



팡야를 구석구석 뜯어보면 그가 말하는 ‘감각’이 무얼 뜻하는지 짐작할 수 있다. 바람의 세기, 홀까지 거리, 클럽 종류, 그린 경사도 등 골프는 한번에 많은 정보를 한 화면에 표시해야 한다. 팡야에서는 유저들이 이런 정보를 직관적으로 편하고 빠르게 알아차릴 수 있도록 돼 있다. 홀컵에서 하늘로 솟은 빛기둥은 공을 쳐야 될 방향을 알려주고, 바람이 불면 돌아가는 풍향계는 바람의 세기를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또 골프 공이 날아갈 때 들리는 ‘팡야’ 하는 상쾌한 소리는 감칠맛을 더한다.


‘재미’에 대한 그의 철학도 뚜렷하다. 사람은 ‘유희의 인간―호모루덴스’로 불린다. 놀이가 곧 일이되고 일이 곧 놀이가 된다. 요즘 온라인게임을 하다보면 다른 유저들에게서 공격을 받는다든지, 아이템을 뺏긴다든지 하면 스트레스를 받기도 한다. 게임을 ‘즐겁자고 하는 행위’ 정도로 내리는 건 옛날 말이다. 굳이 표현하면 ‘희로애락’이 담겨 있는 유희라고나 할까.


“게임 속 재미는 적절한 어려움을 해결해냈을 때 느끼는 성취감이 단계별로 올라가면서 계속되는 것이라고 봅니다. 어떤 위험요소를 해결하지 못하면 좌절을 느끼는 것이고, 해결하면 행복해지는 거죠. 적절한 스트레스를 느끼게끔 난이도를 조절하는 것이 게임 속 밸런스죠. 팡야에는 또 다른 재미가 있어요. ‘대박’의 느낌과 같은 건데요. 우연이든 실력이든 가끔 홀인원이 나오면 강한 쾌감을 느끼게 됩니다.”


그는 첫 온라인게임 ‘팡야’로 상쾌한 출발을 했지만, 도전은 계속된다. 그에겐 자신을 채찍질하고 어려운 상황으로 몰아넣는 좋은(?) 버릇이 있는 듯하다. 개인적으로는 새로운 게임 아이디어를 짜내기 위해 머리를 짜매고 있다. 넓게는 요즘 시들해진 게임 제작자들 사이의 교류를 넓혀보고 싶은 욕심도 있다. 오는 10월에 개최되는 ‘한국개발자 콘퍼런스(KGC)’에서 자문단을 맡았다.



―요즘 어떤 게임을 즐기나요.


“요즘 게임불감증에 걸렸어요. 어떤 게임을 만들어야 될지 고민하죠. 새로운 아이디어에 대한 갈증이 심하다고 할까요. 우리나라가 종주국이라는 온라인게임 제작사들은 이제 어떻게 하면 성공하겠다는 공식을 알았죠. 그러다 보니까 새로운 시도들이 없어요. 그런 매너리즘에 빠져 있는거죠. 중국은 최근 급성장하고 있고, 일본도 온라인게임으로 눈을 돌리고 있죠. 미국도 마찬가지고요. 이런 상황에서 안주하다보면 온라인게임의 판도가 뒤바뀔 수도 있어요. 우리나라도 준비를 해야 합니다. 해외에선 게임개발자 콘퍼런스 등을 개최하며 서로 노하우를 공유하고 있죠. 우리도 그런 게 필요합니다.”



올해 말부터는 또다시 새로운 게임 개발에 착수할 예정이다. 욕심도 많다. 한꺼번에 두 프로젝트를 시작한단다. 하나는 온라인 대작 게임이고, 다른 하나는 온라인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아주 대중적인 게임을 만들고 싶단다. ‘재미’와 ‘감동’을 동시에 주는, 그가 꿈꾸는 게임을 이제 만들기 시작하는걸까.


글 우한울 사진 김주성기자



<서관희 프로듀서 강추 게임 3選>


▲이코(ICO)(PS2)



한 폭의 수채화를 보는 듯한 그래픽, 한 편의 동화처럼 잔잔한 감동을 주는 스토리 등은 유저로 하여금 은근히 게임에 빠지게 만드는 이코의 매력이다. 이 게임은 머리에 뿔이 나 재물로 바쳐진 ‘이코’라는 소년이 성에 갖힌 ‘요르다’라는 소녀를 구출해 낸다는 이야기로 꾸며진다. ‘이코팀’이라 불리는 소니 내부 게임 제작팀이 만든 이코는 2002년 국제게임제작자단체가 수여하는 제2회 ‘게임 디벨로퍼 초이스 어워드’에서 역대 최다로 6개 부문에 호보작으로 올랐고, 게임계의 아카데미상으로 불리는 AIAS(The Academy of Interactive Arts and Sciences)에서도 8개 부문에 추천됐다.



▲페르시아의 왕자―시간의 모래(PS2/XboX/PC)



20여년 만에 새롭게 돌아온 비디오게임이 이런 환영을 받을 수 있을까. 왕자가 공주를 구출해 낸다는, 어떻게 보면 진부한 스토리일 수 있지만, 페르시아 왕자만이 가진 독특한 ‘카리스마’가 있다. 물론 향수로만 그치지는 않는다. 3D 입체로 구현된 페르사이 궁은 하나의 큰 퍼즐이다. 지하에서부터 꼭대기까지 제대로 된 길을 찾아가기 위해선 진땀을 빼야 한다. 도전이 없는 무미건조한 일상이 식상하다면 한번 시도해볼 만한 게임이다. 성취감은 그야말로 짜릿하다.



▲괴혼∼굴려라! 왕자님!(PS2)



‘괴혼’은 밤하늘에 별을 만드는 게임이다. 게이머는 작은 왕자님이 되어 별을 파괴해 버린 ‘아바마마’를 대신해 지구에서 별을 다시 만들어야 한다. 일종의 퍼즐게임이다. 별을 만드는 방법은 간단하다. 계속 굴리는 것. 게임이 시작될 때 주어지는 조그마한 공을 굴려서 주위의 물건을 하나씩 붙이다보면 그것이 커다란 별이 된다. 처음에는 주사위, 지우개 등 조그마한 물건밖에 붙일 수 없지만 점점 커지다보면 집까지 붙일 수 있다.



우한울기자/erasm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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