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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우의 게임산책]’퀄리티’ 낮아도 ’재미’는 최고

Editor.zuke 2005. 5. 7. 0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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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우의 게임산책]’퀄리티’ 낮아도 ’재미’는 최고
출처디지털타임스 5/6


게임의 가치, `심플 2000' 시리즈


이 세상에 나와 있는 게임이 모두 명작은 아니다. 명작은 커녕 범작에도 못 미치는 것이 대부분이다. 게임의 일 만은 아니니 대단한 사실은 아니다. 하지만 이런 설명으로 비싼 돈주고 한심한 게임을 산 게이머들의 마음을 달랠 수는 없다. 이런 일을 미연에 방지하는 해결책은 두 가지다. 하나는 닌텐도의 브랜드 관리 방법이다. 퀄리티가 어느 수준 이상 나오지 않으면 아예 라이선스를 박탈한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완전히 새로운, 혁신적인 게임이 묻혀버릴 수도 있다. 다른 하나는 게이머의 억울함을 덜어 주도록, 아예 처음부터 값을 싸게 받는 것이다. 일본 게임 불황기에 `D3 퍼블리셔'가 혜성처럼 나타나 놀라운 성공을 거둔 것이 바로 이 방법이다. 이렇게 해서 나온, 내용 불문 2000엔 짜리 게임이 `심플 2000' 시리즈다.


저가 게임을 위한 공간


우리 속담에 `싼 게 비지떡'이라는 말이 있다. 가격이 3분의1 이하로 떨어지면 질도 떨어진다. 실사와 구분하기 어려운 그래픽의 시대에, 어디를 봐도 지저분한 그래픽에 엉성한 폴리곤이 불편하다. 하지만 모든 게임이 놀라운 그래픽을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니다. `테트리스' 배경에 수만 폴리곤의 배경 그림을 넣어도, 그건 쓸모 없는 일이다. 친구들이 놀러왔을 때, 또는 가족이 함께 잠깐 가볍게 즐기는 게임 대부분이 이런 경우다.


그래서 `더 블록 하이퍼'와 `더 슈팅 더블 자염룡'은 가격이 강점이다. 제목 그대로 두 게임은 각기 `블록 격파'와 `슈팅'이다. 오랜 세월을 해도 여전히 원초적 재미를 지닌 `블록 격파'다. 이 게임은 그동안 쌓인 다양한 변형과 첨가된 효소들을 하나로 모았을 뿐이다. 그러다 보니까 스테이지만 150개다.


둘이서 협력 플레이를 할 수도, 대전 플레이를 할 수도 있다. 그러다가 지겨워질 때까지 하면 된다. 감동도 갈등도 없지만 할 때 즐겁고, 여럿이 하면 더 즐겁다. 전형적인 파티 게임이다. `더 슈팅 더블 자염룡'은 점점 사라져 가고 있는 탄막피하기 슈팅 게임이다. 쉴 새 없이 화면의 반 이상을 가리면서 날아오는 총알을 처음부터 끝까지 아무 생각 없이 피해 다니면 된다.


이 두 편의 게임은 저가 게임의 수요를 반영한 게임이다. 여기에 필요한 것은 많은 돈과 인력이 들어가는 높은 수준의 그래픽이 아니라, 얼마나 짧은 시간 동안 사람들을 즐겁게 해줄 수 있는가 하는 퍼즐의 로직과 최고의 긴장감을 끌어내는 스테이지 디자인이다. 게이머는 스타트 버튼을 누르자마자 이 게임의 가격이 얼마였는지, 사용한 폴리곤이 몇 개 인 지는 잊어버리게 된다.


그러나 조심해야 하는 게임도 있다. 그래픽이나 사운드 같은 요소 보다는 게임의 로직이 중요한 게임에서 심플 2000 시리즈는 빛을 발한다. 하지만 때로는 이 심플 시리즈의 컨셉과 동떨어진 게임들도 있다. 이번에 같이 나온 `더 켓 파이트'와 `더 러브 어퍼'다. 제목에서 느낄 수 있듯이 미소녀가 쏟아져 나와 대전을 벌이는 게임이다. 다양한 스타일의 캐릭터가 비키니로 시작해 난투를 벌이는 것은 동일하지만, 종목이 스트릿 파이터냐 권투냐가 다를 뿐이다.


미소녀 대전하면 당장 `데드 오어 얼라이브'가 떠오른다. 이 게임들 역시 `데드 오어 얼라이브'를 벤치마킹한다. 하지만 유일하게 제대로 따라한 것은 움직일 때 미소녀들의 가슴이 심하게 출렁거리는 등 민망한 장면이 연출된다는 것뿐이다. 대전 자체는 커맨드 체계도 그렇고, 동작이나 타격감도 그렇고 도저히 대전의 기분을 느낄 수 없다.


어차피 이런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이 대전의 기분은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고 치자. 그러나 더욱 용서할 수 없는 것은 전혀 안 예쁜 미소녀다. 출렁이는 가슴에 폴리곤을 과도하게 사용해서 그런지, 정작 기뻐하며 귀여운 포즈를 취할 때, 게이머의 가슴은 답답해진다. 그래도 친구들끼리 모여서 이 엉성한 아가씨들을 가지고 대전을 하면 게임 내내 폭소를 터뜨리게 될 것은 틀림없다.


미소녀 게임이 지뢰밭이었다면 `더 찬바라'는 핵폭탄이다. 하지만 부정적 의미만은 아니다. 누군가에게는 충격적일 정도로 즐거울 게임이기 때문이다. 때로는 게임 만든 사람의 머릿속에 들어가고 싶은 황당하고, 기괴한 게임들이 있다. `더 찬바라'가 그런 게임이다. 어려서부터 칼 쓰는 법을 가르쳐 주신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해 나선 주인공 `아야'.


하지만 꽃무늬 비키니에 웨스턴 부츠 여기에 카우보이 모자까지. 허리에 찬 긴 일본도가 아니면 비키니 아가씨의 엉덩이만 쳐다보는 미소녀 게임이다. 하지만 좀비가 나오면서 상황이 바뀐다. 무서운 건 좀비가 아니라 아야의 칼질에 토막나서 날아가는 몸뚱이와 퍼붓는 핏줄기다. 더욱이 싸우면 싸울수록 아야의 몸은 좀비의 피로 더렵혀진다. 비키니만을 입은 맨 몸을 타고 바닥으로 뚝뚝 떨어지는 피는 그로테스크한 장면을 만들어 낸다.


이 그로테스크함에 매료돼 칼질을 하고 다니는 게이머에게 `더 찬바라'는 도저히 메이저 회사에서 나올 수 없는 고마운 게임이다. 물론 이 장면이 혐오스러운 게이머는 당장 게임을 꺼버릴 것이다.


새로운 기술이 필요하지 않는 영역에서도 좋지만, 심플 2000 시리즈를 가장 돋보이게 하는 건 `더 찬바라' 같은 게임이다. 많은 돈을 들여 만들고, 그래서 큰 시장을 겨냥해야 하는 게임 제작사들이 도저히 만들 수는 없는 황당한 게임이 심플 2000 시리즈에서는 가능한 것이다.


게임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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